시장을 파괴하는 기업의 본질은 과연 기술에서 나오는가?
책공 5기 Growth or Die 3회차 모임은 탈레스.S.테이셰이라의 '디커플링'을 발제도서로 하여 진행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인하여 아쉽게도 3월 모임이 없었지만, 4월 모임은 개인 위생과 마스크 착용에 유의하여 4월 10일에 진행되었다. 발제도서 디커플링은 내가 복무중이던 2019년에 나왔던 책인데, 당시에도 출간 즉시 서점을 흽쓸며 대단한 화제가 되었던 책이다. 나도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었는데, 책공에서 마침 발제도서가 된 터라 모임 일주일 전부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열심히 읽었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흥미로운 내용들로 채워져 있어서 딱히 어렵지는 않았다.
발제자는 정구봉님으로, 깔끔한 정리와 차분한 진행 덕에 멤버들이 더 편안히 참여할 수 있었다. 아래의 사진들은 구봉님이 준비하신 발제자료들이다.
‘디커플링’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시장 파괴의 진짜 원인은 기술이 아니라 달라진 고객이다.
이는 이전까지 제시되던 일반적인 현대 경영서들과는 다른 견해이다. 페이팔의 창립자 피터 틸은 그의 저서 ‘Zero to One’에서 시장을 독점하려는 기업은 가장 가까운 경쟁자의 10배수준의 기술격차를 가지고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세계는 지금 기술력이 화두다. 머신/딥러닝, 블록체인, VR, AR등의 신기술이 연일 화두에 오르고, 4차 산업혁명의 물결속에 IT 벤쳐 붐은 기술력이 곧 성공이라는 생각을 낳았다. 그러나 저자는 기술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고객이라는 것이다.
디커플링의 원제는 Unlocking the Customer Value Chain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디커플링 기법을 잘 설명한 어구이다. 말그대로 묶여있던 것들을 해체하는 decoupling의 타겟은 고객가치사슬(CVC)로, 고객이 구매하는 과정의 가치고리들의 사슬을 의미한다.
저자는 대표적인 예로 ‘베스트바이’와 ‘아마존’을 제시한다. 한국을 치자면 ‘하이마트’에 해당하는 오프라인 전자/가전제품 소매점 베스트바이는 어느 날 매출이 급감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원인을 찾던 도중, 베스트바이는 고객들이 매장에 와서 제품을 살펴보고 체험해 본 뒤, 휴대폰을 열어 같은 모델을 아마존에서 더 싼 값에 주문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는 대표적인 ‘쇼루밍(Showrooming)’의 사례이다.
고객이 베스트바이에서 전자제품을 사는 과정, 즉 고객가치사슬을 생각해보자. 먼저 고객은 제품 후기들을 사전에 찾아보고 어떤 모델을 위주로 선택해야할 것인지 평가한다. 이후, 고객은 베스트바이에 가서 후보군 중 최종적으로 살 하나의 모델을 직접 고르기 위해 제품들을 체험하고 선택한다. 최종 모델을 고르고 나면, 해당 모델을 주문하고 차로 직접 들고가든, 배송을 시키든 하여 집에서 제품을 사용할 것이다.
아마존은 비록 싼 가격에 전자제품을 팔고 있지만, 고객이 직접 체험하고 선택할 기회를 줄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이 없다(그리고 결국 그게 아마존이 물건을 싸게 팔 수 있는 이유다). 따라서 아마존은 선택(체험)하기와 구매하기 사이의 사슬을 끊고, 체험은 베스트바이에서, 구매는 더 싼 아마존에서 하도록 가치사슬의 두 고리를 해체하는것이다.
이 사례에서 아마존은 고객가치사슬의 한 체인을 끊어내 장악한 ‘디커플러’로, 그 방식은 ‘디커플링’으로 정의된다. 이 디커플링에서 중요한 것은 핵심이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치를 창출하고 확보하는 데에 있어 디지털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즈니스중 상당수는 비즈니스 모델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기술을 새롭게 개발하지 않았다.
즉, 혁신의 시작은 기술집약, 선도가 아니다. 디지털 회사는 기존 기술의 ‘사용자’일뿐, ‘개발자’가 되지는 않아도 좋다. 아마존이 최초의 온라인 쇼핑몰은 아니었다. 단지 고객 가치사슬의 약한 고리를 잘 캐치하여 끊어냈을 뿐이다.
여행 관련 리뷰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 또한 마찬가지이다. 트립어드바이저는 그 동안 이리저리 흩어져있던 숙박, 레저, 액티비티 등의 여행 리뷰 정보를 한곳에 모아 놓음으로써 ‘(구매후) 평가하기’라는 가치사슬을 분리시켰다. 리뷰만 모음으로써 사이트는 여행에 관한 신뢰성있는 정보를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여행업체들의 광고 러브콜을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단한 기술이 사용되었는가? 카테고라이제이션을 제외하고는 그렇지도 않을것이다.
멤버들 중 한 분은 트립어드바이저에 꼭 좋은 리뷰를 남겨달라는 현지 액티비티 담당자의 이야기를 듣고 ‘리뷰의 힘이 생각보다 대단하구나’라고 느끼셨다고 했다. 나쁜 리뷰가 몇개만 있어도 신청이 확 줄어든다고 한다. 배민의 리뷰도 마찬가지일 듯 하다. 지금까지는 바로 BM으로 연결할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저평가된 것이지, ‘리뷰의 집합’이라는게 가지는 잠재적인 힘이 정말 대단한 듯 했다.
디커플링은 고객이 바라보는 BM의 구성요소 중 어느것에 집중했느냐에 따라 총 3가지의 유형으로 나눠진다. 먼저 가치창출 디커플링은 이미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고리가 두개 이상으로 이루어진 사슬의 한 부분을 끊어내어 장악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개인 게임스트리밍 송출 서비스인 트위치는 ‘게임하기 - 게임보기’의 두 고리로 이루어진 가치사슬에서 ‘게임보기’만 분리해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게임을 하는것 뿐만 아니라 게임을 보는것에서도 가치(즐거움)를 느낀다.
두번째로 가치잠식 디커플링은 이전까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어쩔수없이 해야한다고 느꼈던 가치사슬의 한 부분을 끊어내어 버리는것이다. 인터넷으로 게임을 판매하는 디지털 배급사 스팀은 게이머가 비디오게임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에 가서 게임을 사오는 수고를 덜었다. 대신에, 게이머는 집에서 원하는 게임을 스팀에서 사서 온라인으로 다운받아 플레이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가치에 대한 대가부과 디커플링은 가치를 얻기위한 ‘구매하기’라는 사슬을 끊어버리고, 다른 방식으로 그 대가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책에서는 모바일 게임 회사 슈퍼셀의 무료게임-인앱결제 모델을 예시로 들고 있다.
우리는 모임에서 쿠팡의 로켓와우도 이러한 방식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로켓와우는 월 2,900원의 저렴한 회비로 로켓와우상품들에 대한 무료 배송을 보장한다. 한번 배송비가 2500원이니까, 두 번만 시켜도 이득인 셈이다. 쿠팡은 배송서비스에 대한 ‘구매’를 사실상 없애고, 대신 충성도있는 수백만의 고객을 확보했다. 이들은 로켓와우 혜택을 누리기 위하여 쿠팡에서 구매를 더 할테니, 결과적으로는 쿠팡에 이익인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디커플링의 유형에 따른 시장가치는 가치창출이 큰 차이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가치에 대한 대가부과, 마지막이 가치잠식 디커플링이라고 한다.
이후에는 마켓컬리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 마켓컬리는 말그대로 2020년 현재 가장 핫한 스타트업 중 하나이다. 국내 최초로 ‘샛별 배송’이라는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한 이후로 가파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장보러 가던 사람들이 컬리만 보고있다.”라는 광고문구가 무색하지 않다.
마켓컬리 이전에, 사람들은 요리를 하기 위해서 마트에 가서 신선한 재료를 골라(평가하기), 결제한 뒤(구매하기), 집까지 가져와야(수령하기)했다. 그러나 마켓컬리는 이중 평가하기와 수령하기의 사슬을 끊어내어, 신선한 식재료를 직접 선별(평가)하고,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새벽배송서비스를 제공(수령)하는 디커플링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기존 마트들의 식재료 매출을 상당부분 뺏어오며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디커플링의 특징이 하나 더 나오는데, 디커플링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보다는 원래 있던 시장을 잠식해들어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로, 에어비앤비는 개인의 잉여 숙박지를 호텔이 아닌 현지의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매칭시켜준다. 이를 통해 원래 존재하던 여행지 숙박업체 수요의 대부분을 호텔 또는 리조트 시설등에서 끌어와 가파르게 성장했다.
이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는 디육시(디커플링 스타트업 육성 시뮬레이션)에 들어갔다(ㅎㅎ)
디커플링 과정 5단계를 기준으로, 우리는 멤버들 중 한분의 취미인 엔터테이닝한 장보기의 사례를 토대로 디커플링 아이템을 찾기로 했다.
멤버님은 주말에 장보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평일 간 일하며 스트레스 받은 뒤 몸에 좋은 것을 구매하는 시간이므로 소비에 대한 욕구도 채울 수 있고 원하는 것을 평가하며 고르는 과정 자체가 정말 재밌다고 하셨다.
쇼핑 장소를 고르고, 물건을 구경하고, 평가하고, 구매하는 과정은 재미있지만, 즐겁지않은 부분도 있었다. 물건을 수령해오는 과정은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에 해당하는데, 이는 디커플링 과정으로 치면 약한사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디커플링을 시도할 수있는 고리에 해당했다.
따라서 이 스트레스의 원인을 살펴보고 사슬을 끊어내 보기로 했다.
스트레스의 원인
- 차가 없어서 택시를 타야한다.
- 택시를 타는 이유는 무거워서 / 택시비용 발생한다.
- 짐을 드느라 손을 사용하지 못한다.
- 직접 수령의 위험성(물건의 품질이 상할 수 있다) —> 가장 재미있는 요소였던 평가를 무너뜨리는 원인!
벤치마킹
- 갤러리아 백화점 : 컨시어지 -> 내가 본 상품을 그대로 포장하여 집(또는 차)로 가져다 준다.
- 배송 전용 우버
- 마트들만 상대하는 부릉
- 고르는 행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인스타카트같은 퍼스널 쇼퍼 평가형식도 괜찮지않을까?
- 결제 후 포장을 잘 해주는 서비스도 가능하지않을까? -> 이건 퍼스널 쇼퍼가 한번에 해줄수도 있을것같다.
—> 우버/인스타카트식 모델(편리성강조)과 마켓컬리식(고급화)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를 해보니 다양한 방안들이 나왔다. 수령이 힘든 원인은 차가 없기 때문인데,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배송서비스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과적으로 채택된 디커플링은 우버/인스타카트식 모델이었다.
- 카트로 넘기면 포장에서 배달까지 모두 퍼스널 딜리버러가 해결해준다
- 부가적으로 줄서기까지 해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 퍼스널 딜리버러는 건당 수수료(배달비용)를 받으며, 이용자의 평가를 받는다.
이런 모델을 도입하면 오히려 카트를 없애버릴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오프라인 마트들은 카트 분실/관리도 적잖은 비용이 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모델이 도입된다면 배송을 원하는 퍼스널 딜리버러들에게 직접 카트와 같은 운반용품을 가져오라고 하거나, 오프라인 매장을 구매자들의 쇼룸처럼 사용할 수 있을것이다.
정말 끝도없이 아이디어가 나왔다. 스타트업콘서트를 들으면서 재미있다고 느꼈던 기업들과 관련된 이야기라 더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짧은 식견인데도 다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말씀해주셔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던 것 같다. 시장을 분석하고, 경험속에서 창업 아이템을 발굴하는 것이란 이런것이란 것을 느낄 수 있어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후 우리는 COVID19 이후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게 될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마무리했다.
- 헬스장 운동보다 홈트레이닝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다 —> VR+센서를 이용한 온라인 고급 서비스가 출현하지 않을까? 또는 좀비런같이 테마를 입힌 VR레저서비스도 가능할 듯 하다.
- 금융시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늘었고, 이해도도 크게 늘 기회.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금융에 대한 이해도 격차가 심해질것이다.
- 정부가 모든 이에게 복지를 제공할 수 없다면, 기본 복지를 없애고 최소 소득만 보장하는 것이 어떤가?
-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지구촌이 분리되고 로컬화됨으로써, 오히려 내수 시장경제가 살아나지 않을까?
사업 아이템부터 사회 변화에 대한 거시적 시각까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몇개만 적어 보았다. 친구들과 있으면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거의 없는데, 나와 그렇게 나이차가 많이 나시지 않는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다니 정말 깜짝 놀랐다. 들으면서 자극도 많이 받고, 생각도 못했던 점들에 대해서 고민해 볼 기회가 생겼다.
나는 개인적으로 코로나로 인해 국내 대부분의 대학이 사이버강의를 진행하는것을 보며, 그리고 직접 수강하며, 생각보다 사이버로 대체할 수 있는 강의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굳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면 앞으로의 교육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정말로 강의력이 좋은 교수님들은, 연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대학에 남아있으려 할까? 오히려 금전적으로 이득을 보는 프리랜서로 여러 대학 또는 집단을 대상으로 사이버강의를 제공하지 않을까? 이처럼 교육에 있어서도 혁명이 일어날 것 같다고 느꼈다.
최근 K-Ventures라는 창업 네트워크에 들어갔고, 스타트업콘서트라는 강의를 듣고있다. 책공과 병행하며 든 생각은, 결국 서비스를 고민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은 비슷하구나 라는 것이다. 그것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지 아닌지는 둘째 문제다. 그들은 누구보다 트렌드를 빨리 접하고 싶어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에 관심이 있다. Growth or Die라는 주제에 이끌려 들어온 사람들이 이렇게나 비슷한 것을 보면, 책공이 가지고 있는 신기한 매력이 느껴진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멤버님들의 생각과 고민, 관심사를 찾아가는 모습 자체는 닮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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